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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견디는 방법

by 초록구미 2023. 2. 3.

 

<도파민네이션>을 여전히 읽고 있다. 3/4 정도 읽은 것 같다. 특히 와닿았던 이야기가 있었다. 고통을 고통으로 이겨내는 방법이었다.

 

고통과 쾌락은 저울의 양 끝에 올려진 추와 같아서 한 쪽에 무게가 가해졌다 사라지면 반드시 상대쪽에 반동이 오게 된다. 인간의 뇌는 영원히 고통스럽거나 즐거울 수 없다. 고통을 받으면 쾌락이 따라오고 쾌락을 느끼면 고통이 따라온다. 뇌는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이 책의 모든 챕터에서 일관적으로 주장하는 바가 그것이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쾌락에 기대는 것은 단기적인 처방이다. 처음으로 느끼는 쾌락은 짜릿할 것이다. 그러나 두번째가 되고 세번째가 되면 쾌락은 점점 줄어든다. 뇌가 쾌락에 적응하고 나면 처음과 동일한 쾌락을 느끼기 위해 훨씬 커다란 자극이 필요해진다. 더더더 큰 쾌락을 갈구한다. 그렇게 사람은 대상에 중독된다. 쾌락이 휩쓸고 간 자리에 채워지는 고통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쾌락이 강할수록 후에 찾아오는 고통도 강하다.

 

그렇다면 반대도 가능한가?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는 쾌락이 오는가? 이 책은 찬물샤워에 중독된 사람을 사례로 든다. 그는 얼음과 같이 차가운 물에 몸을 담구면 처음에는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행위를 하고 나면 도파민 등의 기분이 좋아지는 신경물질이 분비되는데 이 수치는 샤워가 끝나고도 한시간 이상 평균을 웃돌았다. 고통과 쾌락은 뇌과학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인 것이다.

 

 

고통으로 고통을 이겨내는 요법은 고대로부터 전수되어 왔다. 신체의 어떤 부위에 더 큰 고통을 느끼면 상대적으로 작은 고통은 잊혀진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특히 이런 요법은 자주 사용되어 왔다. 팔을 절단한다던지 전기충격을 가한다던지 말이다. 현대인이 보기엔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방식이다. 그러나 그 본질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잘만 사용한다면 나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내겐 인생의 목표가 하나 있었다.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지 않는 것. 나는 아픈 것을 싫어한다.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고통받고 싶지 않다. 안온한 죽음을 꿈꿨고 이를 행동동기로 삼고는 했다. 정신적인 고통을 받으면 어째서 인간은 괴로워야만 하는지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쾌락과 고통은 양면적인 것이다. 어느 하나만 떼어놓을 수 없다. 나의 뇌는 그렇게 되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적절한 고통이야말로 쾌락의 선결조건이다. 큰 고통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성을 만드는 것이다.

 

책에는 불안증으로 인해 사람 대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의 사례는 나와 비슷했다. 그가 불안증을 치료하기 위해 제안받은 방법은 이랬다. 회사에 가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 느꼈던 불안감을 점수로 매겨본다. 첫 시도에서 그의 불안 정도는 매우 높았다. 말을 걸기 직전까지, 그는 매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며 그가 걱정했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자 불안 수치는 낮아졌다. 이 과제를 반복할 때마다 점점 더 낮아졌다. 한번은 카페에서 점원과 대화할 때 커피를 흘려 굉장히 불안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의 치료사는 이번엔 '일부러 커피를 흘려 보라'고 제안했다. 얼마 뒤 저자가 다시 그를 만났을 땐 상태가 매우 좋아져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사람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오늘 2년 반 동안 한번도 갈지 않았던 핸드폰 필름을 갈고 왔다. 긁히고 더럽혀진 상태였지만 대리점이나 필름가게에 가는 것이 무서웠기에 내버려뒀던 것이었다. 이틀 전에는 친구와 같이 먹을 떡볶이를 시키려고 직접 전화주문을 했다. 그전까지의 나는 전화주문을 할 바에는 가게에 가서 20분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하고 나면 별거 아니다.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벌어진다 해도 고작 떡볶이 2인분을 시키려 했던 내 잘못은 아닐 것이다. 나는 고통스런 경험들을 쌓아가기로 했다.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기대를 증명해주는 경험들. 거대한 고통을 견뎌낼 지지대가 되어줄 경험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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