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tc.

문과가 컴공 복수전공해도 괜찮을까요?

by 초록구미 2022. 10. 2.

들어가기에 앞서 내 스펙(?)을 정리해 보겠다.

 

나는 일본어문과로 입학하여 1-2학기부터 공대계열 과를(정확한 과 이름은 적을 수 없지만, 컴공과 비슷한 커리를 따르는 과다) 복수전공하기 시작했고, 1년 뒤 전과했다. 그리고 현재 나는 3학년 2학기 과정을 보내고 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수학을 좋아하거나 이공계에 흥미가 있는 문과가 아니었다. 내 수능수학 성적은 무려 4등급이었고, 그마저도 입학하고 나서는 대부분 잊어버렸다. 나는 국어와 영어, 사탐에 강한 전형적인 문과였다.

그랬던 내가 왜 공대를 복수전공하고, 전과까지 하게 됐을까?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나는 취업을 잘하고 싶었다.

 

 

1. 복수전공을 시작하기까지

 

나는 내 원래 전공을 좋아했다. 일본의 문화에 관심이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언어를 배우는 건 꽤 재미있었고, 애니나 만화를 어릴 때 봤던 덕분에 노베이스도 아니었다.

 

그런데 인문대생이라면 알겠지만 언어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직종은 극히 한정적이다. 우리 과 학생들은 대부분 복수전공을 하는 분위기였다. 나도 이 시점에서 어떤 전공을 복전할지 고민해야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어떤 전공이든 자신이 없었다. 흥미가 있는 것도, 잘할 자신도 없지만, 그래도 취직은 잘하고 싶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경영/경제공대였다.

 

오랜 시간 고민을 했지만 나는 조금 어이없는 이유로 경영경제를 포기했다. 수학을 못하는 것도 한몫했지만, 팀플이 많은 과라는 사실이 내 발목을 잡았다. 지금의 나라면 그런 이유로 포기하지 않겠지만(당연히 공대도 수학을 하고 팀플을 한다) 당시의 나는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문과인 주제에 문과적 역량이 현저히 부족했기에 도무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컴공은 괜찮다고 생각했을까… 오히려 너무 인연이 없는 과라서 현실감이 덜했던 것도 같다. 운좋게도 컴공과 친구가 곁에 있어서 꽤 많은 도움을 받았다.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나름대로 이악물고 해보자는 결심을 했고, 복전 직전 방학에 파이썬 예습을 시작했다.

 

 

 

2. 문과가 컴공 가면 힘들다던데

 

당연히 힘들다. 적성에 안 맞아서 그만두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컴공에 온다고 무조건 취업이 잘되는 것도 아니다. 실력이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들 하니까.

 

나 역시 비전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만큼 각오를 하고 시작했기에 괜찮았던 것 같다. 나는 문과고, 복수전공이고, 이과적 소양도 모자라니까 남들의 2배를 해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쫓기는 듯한 두려움을 품고 공부를 했다. 미적분도 로그도 잘 모르는 내가 이산수학에서 A+을 받았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물론 운이 따라준 것도 컸다)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서는 당연히 포기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잘 해내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순수하게 학구적인 이유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잠깐 딴소리를 하자면, 일본어과에 오기 전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나는 한자 외우는 걸 정말 싫어했다. 한자능력시험 8급을 겨우 딴 수준이었던가. 게다가 중국어를 잠깐 배우면서 한자가 더욱 싫어졌다(중국어는 너무 재미없고 어려웠다). 그런데 일본어를 배우면서는 그 심했던 한자 혐오가 쥐도새도 모르게 잠잠해졌다. 왜였을까?

바로 한자 혐오를 상쇄할 만큼 일본어 공부를 즐겼기 때문이었다. 일어를 하려면 결국 한자를 떼어놓을 수 없음을 받아들인 거다. 막상 하게 되니 그렇게 싫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 정도 마음가짐은 있어야 한다. 싫어하는 것을 평생 피해다닐 수 없다면, 적어도 싫어하지 않아야 한다. 그정도의 간절함도 노력도 없다면 무엇이든 지속성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3. 전공 공부는 어떻게 하나요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전공 수업에서 괜찮은 학점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수업이 이론적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배운 것을 성실히 복습하고 문제에 적용해 풀어보기만 하면 중간은 간다. 문제는 이렇게 배운 전공지식을 실전에서 쓸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란 것이다.

 

요즘은 어느 과든 학점의 중요성이 크지 않지만 컴공은 더더욱 그렇다. 학점이 높아도 프로젝트 경험이나 코딩 실력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학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이론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실전 경험을 한번이라도 더 쌓는 게 유의미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면 전공에서 배웠던 것은 기초 중 기초, 우물 안의 우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세상에는 이미 좋은 기술이나 프레임워크가 너무 잘 나와있다.

 

그렇다 해도 나는 탄탄한 기초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또 CS 지식을 커리대로 쌓을 수 있는 점이 전공자로서의 장점이니까. 배울 수 있을 때 잘 배워두려고 한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나는 코딩이 적성에 안 맞는 편은 아니다. 머리는 좀 나쁜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재미없지는 않다. 그래서 아직은 제법 버틸만한 것 같다.

 

 

 

4. 개발자에게 필요한 것들

 

코딩 실력이나 개발 지식 외에 개발자에게 가장 필요한 소양이 있다면 영어일 것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자료들은 너무나 빈약하고, 전문성 깊은 글을 찾기 어렵다. 자료 면에서도 그렇지만, 영어를 못하는 사람과 잘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풀 자체가 다른 것도 문제다. 아직 학부생인데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 사회인이 되면 더 심하겠지.

 

나는 이미 3학년이고 개발공부만으로도 상당히 벅차다. 그럼에도 사회에 나가기 전에 영어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개발만 잘하면 된다고 영어를 경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번째로 중요한 것이 있다면 수학인 것 같다. '컴공에 수학 자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수학 자체보다는 '수학적 사고'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학교가 수학이나 물리를 덜 가르쳐서 그런 것도 같다. 그런데 학부생의 좁은 식견으로 비추어 봤을 때, 이 사람들은 이미 (내 기준)수학을 잘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같이 수학 못하는 문과생은 이런 말에 희망을 품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수학을 못하기 때문에 수학적 사고도 못한다. 특히 자료구조나 알고리즘, 코테용 문제를 풀 때 나의 직관력이 얼마나 저수준인지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다. 단순히 내가 머리가 나쁜 걸수도 있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컴공에서 괜히 수학을 가르치는 건 아니지 않겠나? 이산수학, 선형대수학까지는 적당히 할줄 알아야 편할 것 같다.

 

 

 

5. 마무리

 

이 글은 아직 졸업도 안 했고, 프로젝트 경험도 한번뿐인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임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반쯤은 회고의 의미로, 반쯤은 나와 비슷한 조건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사람을 위해 작성했다.

 

3-2과정을 다니는 지금 복수전공이니 문과였니 하는 것보다 더 걱정되는 건 순수하게 내 실력과 경험에 대한 것이다. 어차피 이 과에 오면 알게 된다. 문과 교차지원으로 공대에 온 사람, 생각보다 많다. 상대가 이과라고 무조건 내가 더 못하지도 않는다.(게다가 요즘은 문이과 통합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현업 개발자 문화가 끝이 없는 자기계발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두려운 부분이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미래의 나는 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이 글을 남긴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통을 견디는 방법  (0) 2023.02.03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0) 2022.09.14

댓글